오스트리아 베르글 방문기
November 7, 2006
2006년 11월 3일, 나는 오스트리아 치롤주 베르글시에 있는 운터굿겐베르거 연구소를 방문해 1930년대에 동지로 행해진 역사적인 사례 “노동 증명서”나 현재의 계획에 대해 베로니카 슈피르비히러(Veronika Spielbichler) 여사와 이야기를 했다.
베르글역에 도착한 나의 관심을 우선 당긴 것은, 이정표이었다. 우선 기원 1년 1월 1일에 1 유로를 매년3%의 복리로 맡겼다고 가정하고, 역사적사건(예를 들어 예루살렘의 함락, 니케아 공의회,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이나,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 가 일어난 시점에서 그 예금이 얼마나의 액에까지 부풀어 올라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었다(마지막으로 다 셀수 없는 액에까지 이자가 부풀어 오르고 있다). 통화제도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당연히 실비오 게젤의 “자연적 경제 질서”(영어판, 이정표)의 발행(1916년)이나 동시의 “노동 증명서“의 발행(1932년)도 이 역사적 사건이 되고 있다.
이 후 나는, 미햐엘•운터굿겐베르거가 일찌기 산 집에 있는 운터굿겐베르거 연구소를 방문했다. 슈피르비히러 여사는 우리를 자료관에 데려가 주어 거기서 이 역사적 사례에 관한 사진이나 출판물등을 보여 주었다. 1932년에 당시 베르글 촌장인 미햐엘•운터굿겐베르거는, 지역경제의 발행을 위해서 “노동 증명서”를 발행해, 이것은 “감가하는 화폐”(예를 들어 10000원 지폐이면, 다음의 달이 될 때마다 바로옆에 있는 지폐 1매에 대해 100원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즉 매월1%의 감가)을 위해서 막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사례는 다음 해 오스트리아 당국에 의해서 금지되었지만, 실비오•게젤이 1916년에 “자연적 경제 질서”로 제안한 “감가하는 화폐”의 최대의 성공예로서 이 사례는 온 세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닌 점이다. 슈피르비히러 여사는 베르글의 현재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이 이정표는 시청(시장의 메세지도 있다) 외, 1930년대에 이 실천을 지원해 준 은행으로부터 자금 제공을 받아 작성된 것이지만, 이것에 의해 지역사회가 지금도 이 실천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운터굿겐베르거 연구소에서는 유럽에서의 현재의 사례를 수집하거나 지역 통화의 실천을 생각하고 있는 지역에 어드바이스를 실시하거나 하고 있는 것 외에 현재 동시로 청소년이 지역 활동을 하도록 하기 위한 I-motion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여사에 의하면, 2007년은 “자유 화폐년”으로서 다양한 이벤트(전시회나 연극등)를 할 전망이라고 한다.
(정정:이정표 프로젝트에 자금을 낸 은행은, 1932년의 실천을 지원한 은행과 다른다고 합니다. 베로니카·슈피르비히러 여사, 감사합니다)
현지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은 매우 좋은 것이다. 현지의 운동이 한층 더 발전하기를 기도해 마지않다.